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만약 잠들지 않는 몸을 가지게 된다면 어떨까.

 

잠잘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니 좋을 것 같지만 한편으론 불안할 것 같다.

 

나는 스트레스를 주로 잠으로 풀기 때문에 잠이 없다면 스트레스를 관리하기 힘들어질 것 같다.

 

무라카미 하루키의 '잠' 이라는 소설의 주인공은 어느 날 잠을 잃어버렸다.

 

"잠을 못 잔 지 십칠 일째다." 

 

이 문장으로 소설은 시작한다.

 

주인공은 치과의사인 남편과 초등학생인 아들을 둔 평범한 가정주부이다.

 

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잠을 잃어버렸다.

 

잠을 자지 않는다고 해서 피곤을 느끼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.

 

그저 맑은 정신으로 깨있을 수 있었다.

 

잠을 자는 시간이 통째로 그녀의 것이 되었다.

 

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던 19세기 러시아의 소설을 읽으며 밤을 보내게 된다.

 

낮 시간에 집안일을 하고 아이들을 돌보며, 주부로서 시간만을 보내던 그녀가

 

오롯이 자신의 시간을 가지게 된 것이다.

 

 

 

무채색의 일상에 색을 칠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.

 

책을 읽으며 그런 느낌이 들었다.

 

자신이 좋아하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도 잊어버리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그녀에게

 

이 시간은 단비같이 느껴졌을지도 모른다.

 

이 책은 잠을 잘 수 없는 사람이란 소재와 하루키의 필체가 합쳐져

 

그 신비함이 증폭되었다. 

 

또한, 페이지를 넘기며 나오는 심오한 그림도 그 역할을 했다.

 

나는 빠져들며 책을 읽었다. 

 

이전에 노르웨이의 숲이나, 1Q84같은 하루키의 책을 읽을 때

 

꽤 오랜 시간이 걸려서야 다 읽을 수 있었다.

 

그러나 이 책은 한시간에서 두 시간 정도의 시간만에 다 읽을 수 있었다.

 

분량이 길지 않다 라는 이유도 있지만 신비함에 빠져들어 책을 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.

 

책을 읽고 다시 한 번 하루키에게 빠져들어갔다.

 

 

인간에게 있어 필수적인 잠이라는 요소를 배제한 체 진행되는 이 이야기를 통해

 

중요한 것을 잃어버렸다는 약간의 공포감과, 남들보다 많은 시간을 쓸 수 있다는 약간의 희열감도 느꼈다.

 

책을 읽을 때 주인공에게 몰입하며 읽는 편이어서 

 

주인공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나만의 시간을 얻었다는 것이 너무나 좋았다.

 

 

이 책의 분위기를 느끼기 위해선 밤,

 

그것도 잠이 잘 오지 않는 깊은 밤에 읽는 것을 추천하지만

 

책을 읽고 나서 잠이 올진 잘 모르겠다.

 

어쩌면 나도 주인공처럼 잠이 오지 않는 밤에 자신을 찾는 여행을 떠날 수도 있겠다.

 

무라카미 하루키의 '잠'을 통해 이 신비한 분위기를 느껴보았으면 좋겠다.

 

 

- 10점
무라카미 하루키 지음, 양윤옥 옮김, 카트 멘쉬크 그림/문학사상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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